[Season 1] 기계치 일러스트레이터의 VR 비행 도전기
[Chapter 1] 거대한 검은 덩어리
1. 택배는 설렘을 싣고 (Unboxing)
“와… 이거 가격 실화야?”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긴 조종 장비의 합계 금액을 보고 나는 뒷목을 잡았다. 좀 쓸만하다 싶은 건 내 한 달 생활비를 훌쩍 넘었고, 싼 건 장난감처럼 조잡해 보였다. 그렇게 큰맘 먹고 질렀던 물건이 상자에 쌓여 현관문 앞에 있었다.
택배 박스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빨리 날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광고하는 비싼 조종간을 주문했다. 내가 비행 장비를 시킨 게 맞나? 비행기 날개라도 배달된 건 아니겠지?
“자, 이제 날아볼까?”
설렘을 가득 안고 상자를 동봉한 테이프를 커터 칼로 잘랐다. 하지만 상자가 열리는 순간, 내 기대감은 순식간에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상자 안에는 투박한 검은색 플라스틱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하나는 조종간(Stick), 다른 하나는 **스로틀(Throttle)**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똬리를 튼 뱀처럼 솟은 물건’**과 헬스장에 있는 **‘운동 기구’**로 보일 뿐이었다.
2. 외계어 매뉴얼 (Alien Language)
“으… 너무 무겁다.”
매끈한 곡선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고 알 수 없는 빨간 버튼과 스위치가 여기저기 흉측하게 달려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동봉된 설명서를 펼쳤다.
[System Requirement: DirectX 11, USB port required…]
“다… 다이어트(Direct)? USB는 또 뭐야? 구멍이 다 똑같이 생긴 거 아니었어?”
손바닥만한 설명서에 적힌 외계어에 현기증이 났다. 나는 설명서를 덮고 내 노트북 옆구리에 뚫린 구멍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틀린 그림 찾기’를 시작했다. 대충 맞다 싶은 구멍에 선을 쑤셔 넣었다.
3. 이륙 실패 (Crash)
다시 유튜브에서 설치 영상을 찾아 낑낑대며 책상 위에 조종간을 올리고, 왼쪽에는 스로틀을 놓았다.
“좋아. 날아볼까!”
휘이이이윙-
노트북 팬이 이륙하는 제트기처럼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화면 속의 비행기는 뚝, 뚝 끊기더니 급기야 멈춰버렸다.
“아, 안 돼! 내 작업 파일!!”
비행은커녕, 밥줄인 일러스트 작업용 노트북이 폭발할 것 같았다. 식은땀이 흘렀다. 비행 시작 전에 비명을 지르는 팬 소리를 듣고 황급히 컴퓨터를 껐다.
4. 구조 요청 (SOS)
나는 멍하니 검은 화면에 비친 내 당황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동네 어귀에 있는 간판 하나를 떠올렸다.
<타이탄(TITAN) PC방>
혼자 설치하는 건 무리였다. 나는 주섬주섬 비싼 장비들을 쇼핑백에 집어넣고 집을 뛰쳐나왔다.
- [시즌1 프롤로그] 잿빛 캔버스 위로 튄 파란 물감
- 1장. 거대한 검은 덩어리
- 2장. 타이탄 PC방 사장님
- 3장. 나만의 조종간. (feat. 메타파일럿 대여)
- 4장. 비밀의 문 뒤에는 괴물이 산다
- 5장. 설치만 150기가? 인내심 테스트
- 6장. 유튜브 선생님과 과외 쌤, 그리고 VR
- [1교시] 나의 첫 번째 날개 (Control Surfaces)
- [2교시] 여섯 개의 눈 (The Six Pack)
- [3교시] 시동과 활주 (Start & Taxi)
- [4교시] 중력을 거스르는 힘 (Take-off & Climb)
- [5교시] 수평 비행과 트림 (Straight & Level, Trim)
- [6교시] 마의 구간, 착륙 (Landing & Flare)
- 7장. 가짜 하늘이 주는 진짜 어지러움
- 8장. 목에 깁스를 한 파일럿
- [7교시] 길 잃은 아이와 나침반 (Dead Reckoning)
- [8교시] 하늘의 보이지 않는 도로 (Traffic Pattern)
- [9교시] 구름 속의 산책 (Instrument Flying Basics)
- [10교시] 초록색 바늘을 쫓아서 (VOR Navigation
- [11교시] 신의 붓터치, ILS (Instrument Landing System)
- 9장. 단추 하나로 거인을 깨우다
- 10장. 보라보라섬의 실기비행 (Cessna 152 Checkride)
- 11장. “합격입니다, 카야 파일럿” (Final Checkride)
- [에필로그] 회색 벽에 걸린 파란 하늘, 그리고…
- [등장인물] 소개




